(神風)
원래의 뜻은 신의 위력으로 부는 바람을 의미하나 제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전투기 조종사들이 조직한 육탄공격(자살)을 특공대를 지칭하는 것으로 더 많이 사용된다.
13세기 후반 고려를 굴복시킨 원(元)세조 쿠빌라이 칸은 일본까지 정복하려 했다. 충렬왕 즉위 원년인 1274년 10월 3만명의 여.몽(麗蒙)연합군은 합포(合浦.지금의 마산)를 출발, 일본 규슈의 하카다(博多)를 공격했으나 태풍으로 실패한다. 7년 뒤인 1281년 쿠빌라이는 다시 14만명의 대군을 동원, 2차 일본 정벌에 나서지만 역시 태풍으로 실패한다.
일본 규슈지방에 음력 10월(1차 정벌)들어 태풍이 올 확률이 1.4%, 8월 초(2차 정벌)에 태풍이 올 확률은 4% 정도라는 게 기상전문가들의 계산이다. 따라서 여.몽연합군이 두차례에 걸쳐 연거푸 태풍을 만날 확률은 1%도 안된다.
당시 몽고군의 막강한 육상전력을 감안하면 두차례 중 한번만이라도 태풍이 불지 않았으면 일본 정벌은 성공했을 것이다. 따라서, 일본인들이 이 태풍을 '신이 보내준 바람' , 즉 '가미카제(神風)' 로 부르게 된다.
원의 일본정벌 실패 이후 6백63년 뒤인 1944년 가미카제 자살특공대가 등장한다. 이해 10월 제2항공사령관으로 필리핀 마닐라에 부임한 오니시 다키지로(大西瀧治郞)중장이 점점 숨통을 조여오는 미 항공모함을 공격하기 위해 창안해 냈다.
그가 예하 201해군항공대에 "제로전투기(零戰)에 2백50㎏의 폭탄을 싣고 육탄돌격하는 것 외에 확실한 공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고 말하자 세키 유키오(關行男)대위 등 24명이 자원, 최초의 '가미카제특별공격대' 가 창설됐다.
그러나 당시 이를 '가미카제' 라고 부른 것은 아니다. '神風' 의 한자식 발음인 '신푸' 로 불렀는데, 전후에 일반인들이 자살특공대를 통틀어 가미카제로 부르면서 이 이름이 굳어졌다.
이후 3천5백여명에 달하는 젊은이들이 '천황폐하만세' 를 외치며 자살공격을 감행하여 3백50척이 넘는 연합군 전함이 피해를 봤지만 전세를 뒤집기엔 역부족으로 사실상 실패했다.
고려를 굴복시킨 원(元)세조 쿠빌라이 칸은 내친 김에 일본까지 정복하려 했다. 충렬왕 즉위 원년인 1274년 10월 3만명의 여.몽(麗蒙)연합군은 합포(合浦.지금의 마산)를 출발, 일본 규슈의 하카다(博多)를 공격했으나 태풍으로 실패한다. 7년 뒤인 1281년 쿠빌라이는 다시 14만명의 대군을 동원, 2차 일본 정벌에 나서지만 역시 태풍으로 실패한다.
일본 규슈지방에 음력 10월(1차 정벌)들어 태풍이 올 확률이 1.4%, 8월 초(2차 정벌)에 태풍이 올 확률은 4% 정도라는 게 기상전문가들의 계산이다. 따라서 여.몽연합군이 두차례에 걸쳐 연거푸 태풍을 만날 확률은 1%도 안된다.
당시 몽고군의 막강한 육상전력을 감안하면 두차례 중 한번만이라도 태풍이 불지 않았으면 일본 정벌은 성공했을 것이다. 그러니 일본인들이 이 태풍을 '신이 보내준 바람' , 즉 '가미카제(神風)' 로 부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로부터 6백63년 뒤인 1944년 가미카제 자살특공대가 등장한다. 이해 10월 제2항공사령관으로 필리핀 마닐라에 부임한 오니시 다키지로(大西瀧治郞)중장이 점점 숨통을 조여오는 미 항공모함을 공격하기 위해 창안해 냈다.
그가 예하 201해군항공대에 "제로전투기(零戰)에 2백50㎏의 폭탄을 싣고 육탄돌격하는 것 외에 확실한 공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고 말하자 세키 유키오(關行男)대위 등 24명이 자원, 최초의 '가미카제특별공격대' 가 창설됐다.
그러나 당시 이를 '가미카제' 라고 부른 것은 아니다. '神風' 의 한자식 발음인 '신푸' 로 불렀는데, 전후에 일반인들이 자살특공대를 통틀어 가미카제로 부르면서 이 이름이 굳어졌다.
어쨌든 이후 3천5백여명에 달하는 젊은이들이 '천황폐하만세' 를 외치며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무모한 자살공격을 감행했다. 이로 인해 3백50척이 넘는 연합군 전함이 피해를 봤지만 전세를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다.
이처럼 일본 군국주의의 광기(狂氣)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인류사적 죄악인 가미카제 특공대를 두고 "어려울 때는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을 생각한다" 는 일본 총리의 망언이 주변국의 분노를 사고 있다.
때마침 서울에선 '태산 같은 성은' 운운하는 시대착오적 신판 충신연주지사(忠臣戀主之辭)가 최단기 장관 경질 기록을 세웠다. 도대체 한국과 일본의 역사시계는 지금 몇시인가. 지금이 21세기 맞나.
(2001년 5월 24일. 유재식 베를린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