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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사의 복원

최초작성 [Opentory 05.26 18:09] | 마지막 업데이트 [Opentory 05.26 18:09] 이 문서는 총 171번 읽혔습니다.

고고학의 자료를 해석하는 데는 수직적인 고찰과 수평적인 관찰이 필요하다. 수직적 고찰이란 발굴된 유물의 고증을 통해 편년과 문화의 자체발전을 추구하는 것이며,수평적 관찰이란 토착문화와 주변의 외래문화를 비교연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두가지의 종합적인 연구가 따르지 않으면 한 시대의 역사를 복원할 수가 없다. 한일고대사의 최대 쟁점인 가야국에 대한 연구만해도 그렇다. 일본 역사학계가 광개토대왕의 확실치 않은 비문을 토대로 한반도 남부의 경영설을 주장하는 이른바 마마나(임나)는 1세기에서 6세기까지 낙동강 하류지역에 있었던 가야국이 무대다. 일명 가락 또는 가라,가야로 불리는 가야국은 낙동강을 중심으로 수십개의 부락국가인 마을이 점차 작은 부족국가를 형성,6가야가 된다. 그 가운데서도 김해 김씨의 시조인 수로 또는 수릉이 세웠다는 금관가야는 6가야의 맹주였다. 이 가야국은 지리적으로 일본과 가까워 일찍부터 일본인의 왕래가 빈번했고 한때 그들의 세력이 커진 일도 있었다. 바로 이것을 근거로 일본은 낙동강유역에 「일본부」가 있어 마치 한반도남부를 다스린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일본은 한국을 병탐한 후 집중적으로 가야고분 발굴등 가야문화연구에 몰두해 적지않은 성과와 출토자료를 남겼다. 물론 광복후에는 일인들의 학설을 뒤엎기 위해 우리 학자들의 조사와 연구도 활발했다. 그러나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존하는 가야관계 사료는 지극히 엉성할 뿐 아니라 남아 있는 것 또한 단편적인 내용이어서 이를 토대로 종합적인 가야사를 복원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경성대 박물관조사단이 김해시 대성동소재의 고분군 속에서 4세기말에서 5세기초로 추정되는 왕릉을 발굴한 것이다. 주ㆍ부곽에 길이가 8m가 넘는 것을 보면 왕릉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특히 3백여점의 유물 가운데 4세기의 파형동기와 통형동기는 일본 근기지방에서 나온 유사한 유물보다 연대가 앞섰을 뿐 아니라 갑주류는 일본 출토품보다 더 정교하고 시대도 앞서 금관가야의 문화가 일본에 흘러들어간 것을 입증해주고 있다. 따라서 이번 발굴은 가야사의 복원과 함께 지금까지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경영설이 하나의 역사적 허구임을 드러내는 결정적인 자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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