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서는 어느 마을에서나 교회가 마을 한가운데 서 있다. 교회를 중심으로 해서 도시가 틀 잡혀갔다고 볼 수도 있다. 일본에서도 사원들은 모두 도시 한복판에 있다. 한국의 사찰은 그러나 인적이 드문 깊은 산중에 자리잡고 있다. 중생의 세속과 절을 산과 수목이 가로막고 있는 형극이다. 아마 이런데 한국 불교의 기구한 역사나 특수한 성격이 있는 것인가 보다. 그렇다고 명 사찰은 아무 산에나 있는 것은 아니다. 명 산 속에 있기 때문에 명찰이 된 것은 아니겠지만 명찰이라면 으례 명 산 속에 있다. 18세기의 실학자인 이중환은 <팔역지>속에서 한국의 명산을 들고있다. 금강·설령·오대·태백·소백·속리·덕유·지리, 관북의 칠지·묘향·가야, 안동의 청량 등 12개를 그는 들었다. 명산은 예부터 문사·시객들이 즐겨 찾았다. 지리산만 해도 이인로는 「유지리산」이란 시를 읊었고, 최치원도「입산시」를 남겼다. 설악산은 또한 원효대사가 수도하던 곳이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가야산에서는 최고운은 「총원시」를 남겼고, 김종직은 『도원으로 가다 길을 모르고 반생을 지나 오늘에야 알게 되니 조물의 시기련가』하고 홍류동을 노래하기도 했다. 이런 명산들에는 모두 영봉들과 울창한 고목들로 자연의 신비한 성역을 이루고 있었다. 가령 『원숭이 울음소리만이 들리는』울창한 전나무 과학나무 등의 수림을 헤치면서 지리산의 천왕봉에 오르면 바위 떡 풀을 비롯한 진기한 고산식물들이 무성하다. 설악산의 비선대에 오르는 길은 또 푸른 소나무로부터 잣나무·측백나무·향나무들과 또 고산식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수목들로 아기자기하게 수 놓여져 있다. 속리산에는 느티나무·대 죽나무·시어나무 등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특히 연송정에는 「정 이품」솔이라는 수령 4백년이 넘는 소나무가 오늘도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그래서 추파라는 시인은 송대 천년수라고 읊은 적도 있다. 해인사에는 또 최치원이 심었다는 학사대의 천년고목이 있고, 희랑조사의 입김이 서린 천년 반송이 있다. 물론 그 둘레에는 낮에도 햇빛을 보지 못할 만큼 울창한 수목들이 늠름함을 자랑하고 있다. 이런 가야산의 자연을 보호하고 개발하려는 뜻에서 정부는 이번에 이 일대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해인사승려들은 사찰자치권의 침해라면서 극한적인 투쟁을 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한다. 현대의 물결이 경내에까지 밀려 온 느낌이 든다. 그러나 「중생」과 절 사이를 수목으로 가로막겠다는 이 속의 법은 뭔가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 틀림없다. 왜 옛 스님들이 산중에만 절을 세웠는지를 다시 음미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