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결은 속이지 못한다. 아침, 저녁으로 살갗에 스치는 바람 속엔 가을의 입김이 묻어 있다. 엊그제까지도 그렇게 무더운 나날이더니, 잠깐 사이에 벌써 공기의 냄새와 느낌이 다르다. 놀라운 것은 어김없는 천지의 운행이다. 우리 나라의 가을은 누가 천금을 준대도 바꿀수 없다. 하늘이 맑고 깨끗한 것은 말할 것 없고 공기마저 알맞게 건조해 기분을 마냥 상쾌하게 해준다. 사람들은 모두 마음하나만 편하면 모르는 사이라도 길에서 만나 서로 눈인사를 나누고 싶을 정도다. 그렇게 우리의 가을은 마음을 깨끗하고 안온하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는 그 좋은 계절을 잊어버린지 오래다. 공기가 맑은 것은 어느 산골의 얘기로 소문이나 들어야 하고, 하늘이 깨끗한 것은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다음의 일이다. 최루탄은 이제 서울의 명물이 아니다. 요즘은 웬만한 지방도시에서도 날아다닌다. 지난 며칠 올림픽 덕분에 경찰은 최루탄을 자제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갈지 불안하다. 우리가 잊어버린 것은 하늘과 공기만이 아니다. 가을날의 그 정적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어쩌다 들리는 새벽녘의 귀뚜라미 소리는 차라리 정적을 알리는 유일한 신호다. 그 귀뚜라미라도 바퀴벌레가 기어다니는 아파트 시멘트 바닥에 뛰어들어 자연의 소리를 내는 것은 더없이 고마운 일이다. 북송의 시인 구양수는 가을밤에 글을 읽다가 무슨 소리를 듣는다. 처음에는 쌀 씻는 소리 같더니 그 소리가 점점 커져 나중엔 물 속에서 돌 굴리는 소리, 군사들이 호령하는 소리, 창칼이 부딪치는 소리로 변했다. 동자를 불러 그 소리의 진원을 물었다. 『달도 밝고 별도 밝습니다. 하늘엔 은하수도 선명하고 사람이라고는 자취도 없습니다. 소리는 다만 숲속에서 나올 뿐입니다.』 가을 바람소리를 그렇게 묘사한 것이다. 백거역(당 시인)의 극적인 시도 한 귀절 있다. 『…홀로 문을 나가 들을 바라보니, 달은 밝은데 메밀꽃이 눈처럼 희다.』상상만 해도 그런 가을은 환상적 이다. 자, 우리는 언제나 이런 가을을 맞는가. 시도 때도 없이 화염병이 난무하고, 도심의 곳곳엔 투구를 뒤집어 쓴 전경들이 진을 치고 서있다. 귀뚜라미가 아무리 정적을 흔들어도 가을은 멀기만 하다. 시절은 말복을 지나고 있는데 하루하루가 답답하고 심드렁하다. 우리는 세상이 달라져도 가을다운 가을은 아직 찾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