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있어 귀 기울이면 바람에 가을이 묻어 오는 소리』(윤곤강 ) 창문을 닫을 수 없다. 어디서 그처럼 영롱한 소리들이 굴러 들어오는지. 요즘은 벌레들 소리 속에 잠이 들고, 새벽을 맞는다. 한낮에도 팔뚝에 와닿는 햇살은 맑고 깨끗하다. 눅눅한 무더위의 그것이 아니다. 말복이 지나면 기분은 어느새 가을이다. 지난여름은 유난스럽게 무더웠다. 기상사상에도 올여름은 예년보다 2, 3도가 높은, 「더운 통계」로 나타난다. 대구의 38도2분은 사뭇 열대성이다. 서울도 34도가 매일이다시피 했다. 또 지난여름처럼 지리 하게 긴 여름도 없었다. 5월부터 계속되는 「정치적 여름」이 아직도 끝이 나지 않았다. 대학의 여름방학은 6월부터 지금까지 계속된다. 대학총장들의 훈시, 이효상 의장의 제2수습안은 「정치의 입추」를 제안하지만 『가을이 묻어오는 소리』는 어디쯤에 있는가. 『주여, 때가 왔읍니다. 여름은 너무 길었습니다. 당신의 그늘을 태양시계 위에 두십시오. 그리고 평야 위에 바람을 풀어놓으십시오.』(릴케) 가을의 바람은 「이성」처럼 순수하고 투명하다. 머리를 식힐 때가 되었다. 모두들 부지런할 때가 되었다. 관사는 시민에게 짜증을 부리지 않아도 좋을 계절이다. 상인들은 차차 가을의 경기를 기다릴 것이다. 학생들은 좋은 계절을 무턱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모든 시정 인들이 기쁨과 보람 속에서 가을을 맞게 해야 한다. 가을은 농민의 계절이다. 우리는 농부들에게 가을의 환희를 찾아주어야 할 것이다. 67년의 가을이 그들에게 또다시 좌절과 실의에 계절이라면 우리사회는 틀림없이 잘못되어 있다. 농민들의 시름 속에서 포식하는 가을은 죄스럽다. 이 좋은 시절에 정치인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 깊은 가책이 있어야 할 것이다. 『과실들에 최후의 완열을 명하십시오. 그들에게 아직 이틀만 볕바른 날을 주십시오. 그들이 완성하도록 무거운 포도송이에 최후의 단맛이 들도록 재촉하십시오.』 「릴케」의 기도는 우리의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