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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최초작성 [WikiSysop 12.21 13:35] | 마지막 업데이트 [Opentory1 08.28 11:06] 이 문서는 총 521번 읽혔습니다.

(catholic)


2세기 이래로 교회의 저술가들이 이단종파로부터 그리스도교 전체를 구별하기 위하여 사용한 용어. ‘보편적’이란 뜻의 그리스어 katholikos에서 나온 말이다. 예루살렘성 키릴루스가 쓴 《교리문답》(348)에 따르면, 교회를 가톨릭이라고 부른 이유는 교회의 세계적 보편성, 교리의 완전성 때문이라고 한다. 또 보편적으로 가르치고 행하여지는 것이 진리라고 보는 견해로 가톨릭이라는 용어는 ‘정통적(orthodox)’이라는 의미로 통용되었다. 그러나 로마가톨릭교회에서 이단 또는 분파주의자로 불렸던 여러 집단들도 자신의 보편성을 주장하였고, 지금도 로마가톨릭 교회뿐 아니라 동방정교회· 성공회· 주요 개신교교회 및 다른 교파들도 자신들이 가톨릭교회의 일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편집 | 한국천주교 이미지 단일화

한국천주교 안내 그림표지
한국천주교 안내 그림표지

천주교 안내 그림표지 등록은 천주교회 이미지를 단일화하고 유사 표지의 난립을 막으면서 저작권도 확보하기 위한 차원이다.

한편 천주교 주교회의는 성당 앞에 내건 간판의 표기를 표준화, '천주교 00성당'식으로 통일하기로 했다.

2005년 현재는 각 지역 성당 별로 '서울대교구 00동 천주교회' '천주교 00교회' 등으로 다양하게 이름을 내걸어왔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서울대교구' '원주교구'등의 교구 명칭은 생략하고 지역 명칭만 가운데 넣게 된다.


| 편집 | 한국 카톨릭의 역사

한국 가톨릭의 역사는 다른 지역에 비해 특이하다. 서구 열강은 총과 성경을 앞세워 아프리카.아메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했으나 한국은 처음부터 기독교를 자발적으로 수용했다. 1784년 중국 나라에 가서 세례를 받은 이승훈은 한국 천주교의 첫 장을 열었다.

200년 뒤 1984년 5월 6일 서울 여의도에선 천주교 신자 100만명이 모인 초대형 행사가 열렸다. 천주교 전래 200돌을 기념하는 동시에 순교자 103명을 성인으로 올리는 시성식이 거행됐다. 순교자 103명이 가톨릭 최고의 명예인 성인 대열에 오른 것은 세계 가톨릭 2000년 역사에서 처음 있었던 일이다.

20년 전의 시성식은 지구촌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외래 종교의 성공적 토착화라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당시 방한했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빈틈없는 행사 준비를 보고 "한국의 선진화된 질서에 새삼 감탄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1984년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100만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103위 시성식을 행했으며, 2004년 5월 1일 서울 절두산 성당에선 성직자.일반인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 103위 순교 성인 시성 20주년 기념 장엄미사'가 열렸다. 서울대교구 정진석 대주교가 집전하는 미사는 '천주교의 한국화'를 보여주듯 국악으로 진행됐다.

천주교 측은 이번 미사를 계기로 신유박해(1801년) 이전에 순교한 신자 124명을 복자(福者.성인 다음의 품계)로 올리는 사업도 추진하며, 그간 자료 부족으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던 순교자들에 대한 일종의 '명예 회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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