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이 불이 없어 어둠과 추위에 떨며 지내는 것을 측은히 여겼다. 그는 제우스로부터 불을 훔쳐 인간에게 건네준다. 격노한 제우스는 그를 크라카우산 바위에 묶어 놓고 독수리로 하여금 간을 쪼아먹게 했다. 낮에 파 먹힌 간은 밤에 재생돼 헤라클레스가 독수리를 죽이고 사슬을 풀어줄 때까지 그의 고통은 이어졌다.
과학전문지 『사이언스』(1997년 276호)엔 간은 일부를 절제하거나 손상돼도 바로 재생된다는 사실을 고대 그리스인도 알고 있었기에 이런 신화가 탄생했다는 논문이 실리기도 했다. 이처럼 간은 신체에서 최고의 재생력을 지녔다. 수술로 85%를 절제해도 두세 달 뒤면 원래 크기로 자란다. 일시적인 폭음이나 간염으로 손상돼도 며칠 술을 끊거나 간염이 완치되면 곧 원상 회복된다.
신체 내 간의 역할을 축구 포지션으로 비유하자면 링커 같은 존재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포도당·아미노산·지방산 등으로 분해된 뒤 장과 간을 잇는 간문정맥을 거쳐 간으로 들어와 각각 필요한 세포로 ‘볼 배합’이 된다. 음식이 적을 때 위가 아니라 “간에 기별도 안 간다”고 하는 것은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말이다.
간은 ‘침묵의 장기’다. 바로 바로 고장신호를 보내는 다른 장기와 달리 70%가 파괴될 때까지도 묵묵히 일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간이 ‘신음 소리’를 내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기 십상이다. 20일 ‘간의 날’을 맞아 대한간학회가 가벼이 넘겨선 안 될 통계 자료 하나를 내놓았다. 성인의 28%가 지방간을 갖고 있으며 지방간 보유자가 20년 새 세 배나 늘어났다는 것이다. 지방간은 간 손상의 시작을 알리는 시그널이다. 간경화에 이어 간암으로 진행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만큼 대비할 여유가 있다.
한 가지 걸리는 것은 최근 급작스럽게 악화된 경제 상황이다. 외환위기 때도 ‘간의 천적’인 술로 스트레스를 풀려는 사람이 급증했다. 게다가 간의 새로운 ‘파괴자’로 떠오른 비만도 급속도로 늘어나는 추세다.
간을 아끼는 법은 의외로 쉽다. 술 덜 마시고 살 덜 찌는 것이다. 미국에서 1920년대 금주령 시대를 거친 뒤 간경화 환자가 대폭 줄었다는 역사적 증거도 있다. 묵묵히 일해주는 간을 위해, 마시더라도 안주와 함께 몇 잔만 마시고 1주일에 반드시 2~3일은 술을 멀리하는 정도의 예의는 갖춰야 하지 않을까.
2008.10.24
중앙일보,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