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開城直轄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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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북서쪽에 위치한 시. 면적 1,211㎢, 인구 40만 3,571명(1991 추정). 행정구역은 1시 3군으로 이루어져 있다. 북위 38°선 바로 남쪽의 군사분계선에 가까우며, 서울 북쪽 78㎞ 지점에 위치한다.
475년 동안 고려의 왕도(王都)로서 송도(松都)· 개경(開京)· 중경(中京)· 송경(松京) 등의 옛 이름이 있다. 광복 후 남한 최북단의 도시였으나 6· 25전쟁 후 휴전선 북쪽은 북한 관할하에 들어갔다.
농업 생산에 유리한 지형· 기후· 토양 등의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다.
919년 고려 태조 왕건이 개경 또는 송도로 부르던 이곳을 왕도로 정하고 개주라 한 이래, 960년 개경, 995년 개성부, 1394년 개성, 1438년 개성부, 1906년 개성군, 30년 개성부로 개칭, 1949년 시제 실시로 개성시가 되었으나 6· 25전쟁으로 북한 관할하에 들어갔다.
1952년 황해북도에 속하였다 1955년 개성시· 개풍군· 판문군이 합쳐져 개성직할시가 되었다. 1961년 황해북도에 속하였던 장풍군과 강원도 철원군 일부를 병합하였다.
북쪽은 산악지대이나 남쪽은 개성분지를 이루고 있다. 예로부터 고려자기와 고려인삼으로 유명한 고장이며,보부상 및 송방(松房)은 예로부터 상업경영에 뛰어나 전국적으로 이름이 높다. 고려시대 유적지가 잘 보존되어 있다.
개성성터는 919~1209년경에 축조된 고려조의 수도성이며, 만월대는 송악산 기슭에 있는 황궁터이고, 1394년에 축조된 남대문에는 우리나라 3대 명종의 하나인 연복사 대범종이 있다.
선죽교는 충신 정몽주가 암살된 곳으로 유명하며, 성균관은 1089년 문종의 별궁에 국자감을 옮겨놓은 것이다. 이 밖에도 관음사, 흥국사 석탑, 공민왕릉, 현릉, 대흥산성, 관덕정과 박연폭포, 만월대· 숭양서원 등이 있다.
개성은 수도권에서 접근하기 좋고 유적지가 많아 그동안 관광객의 인기를 끌었다. 2007년 12월 5일부터 2008년 11월 23일까지 10만9540명이 개성을 다녀왔다. 2008년 7월 발생한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전까지만 해도 관광객 수는 늘어나는 추세였다.
개성 중앙일보,분수대,2004.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