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河野洋平, 1937~ )
일본 자민당총재, 외상. 일본 중의원 의장.
13선으로 자민당 총재. 외무장관 등을 지낸 원로 정치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73년 일본 체류 도중 한국 정부에 의해 납치됐을 때 구명운동에 적극 나섰다. 대표적 지한파(知韓派) 정치인 중 한명이다. 2002년 4월에는 아들인 고노 다로(河野太郞.41) 자민당 의원으로부터 간의 일부를 이식받는 수술을 받아 건강을 회복했다.
1967년 첫 당선한 뒤 14선을 기록한 고노 의장은 40여 년에 걸친 정치 인생에서 평화주의·온건보수를 추구해왔다. 특히 전쟁 반성과 이웃국가 중시를 강조해왔다. 그는 2006년 8월 15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총리가 태평양전쟁 1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참배하자 “전쟁 책임을 애매하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한국·중국 등 피해국의 입장을 배려한 것이다.
영토 문제에서도 대화를 통한 해결을 주장해왔다. 2008년 7월 독도 영유권 문제가 다시 불거지자 “서로 자기주장만 하지 말고 함께 진지하게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입장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보수 정치인들이 “특정 입장을 대변한다”라고 반발했지만 아사히(朝日)신문은 “전쟁을 반성하고 선린 관계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것은 입법부 의장의 마땅한 도리”라며 그의 소신을 높게 평가했다.
1976년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가 거액을 받은 록히드 뇌물사건이 발생하자 “자민당 금권정치의 개혁”을 외치며 탈당했던 그는 1986년 “내부에서의 개혁”을 주장하며 복당한 뒤 평화주의 노선을 본격화했다. 우경화하는 일본 정계에서‘비둘기파’를 자처한 그는 1994년부터 2000년까지 6차례나 외상에 발탁되면서 선린 외교 노선을 걸었다. 외상으로 있던 2000년에는 북한에 쌀 50만t 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1950년대 자민당 정권에서 농림상을 지냈던 부친의 뒤를 이은 2세 정치인이다. 하지만 그는 신념을 위해서는 힘든 길도 피하지 않았다. 1993년 자민당이 야당 연립에 정권을 내주었을 때 총재를 맡아 당의 분열을 막기 위해 거친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자민당에서 총재를 맡았으나 총리가 되지 못한 유일한 정치인이 됐다. 어려운 일이 닥치자 “총리 노릇이 힘들다”면서 중도사퇴한 아베나 후쿠다 야스오 총리와 같은 나약한 2세 정치인들과 사뭇 다른 면모다.
그는 아들 다로(太郞)를 미국 조지타운대에 유학시킨 뒤 중의원 의원으로 키웠다. C형 간염에 걸렸던 2002년, 아들의 간을 이식 받아 건강을 회복하기도 했다. 이 부자는 모두 ‘지한파’로 알려졌다.
고노 의장이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은 것은 1973년 김대중 납치 사건이 계기였다. 당시 고노 의원은 한국 정부를 상대로 끈질기게 김대중 구명 운명을 펼쳤다. 그 뒤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격세지감을 느꼈다”라고 주변에 털어놓았다.
고노의 마지막 정치 활동도 반전·평화와 관련이 있다. 2008년 8월 종전 63주년을 맞아 히로시마(廣島)에 주요 8개국(G8) 국회의장 회의를 유치한 것이다. 일본 정치권 관계자는 “고노 의장은 정계를 은퇴하지만 그가 남긴 평화주의 노선은 일본 정치권에 오랫동안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 중의원 의장이 정계를 은퇴한다. 일본 언론들은 고노 의장이 차기 중의원 선거에 출마하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2008년 9월 17일 보도했다.
고노 담화 중앙일보,분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