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6월 스페인 의회는 고릴라·침팬지·오랑우탄 등 유인원의 권리를 보호하라고 정부에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인간과 유전적으로 가장 유사한 유인원에게 사람처럼 생존권·자유권을 부여하라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사람과 침팬지, 사람과 고릴라의 DNA를 비교하면 각각 2% 안팎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인간과 고릴라가 공통 선조로부터 갈라져 나온 것도 약 900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
고릴라는 이스턴고릴라와 웨스턴고릴라 두 종으로 나뉜다. 털 색깔이 짙은 이스턴고릴라는 아프리카 중부 내륙의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살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국립자연공원인 이 나라 비룽가 국립공원에는 이스턴고릴라의 아종(亞種)인 마운틴고릴라 380여 마리가 살고 있다. 전 세계 700여 마리의 절반이 넘는 숫자다. 나머지는 국경 너머 르완다·우간다에 있다.
비룽가 공원의 고릴라는 10년 이상 계속되는 내전의 위협을 받고 있다. 1994년 르완다에서 투치족과 일부 온건파 후투족 등 100만 명을 학살했던 후투족 세력이 잠입해 정부군과 교전을 벌이는 와중에 고릴라들이 희생되고 있다. 반군은 배가 고프면 고릴라를 잡아먹기도 하고, 정부군이 소탕작전을 벌일 경우 고릴라를 몰살시키겠다는 협박도 한다.
고릴라 서식지가 전쟁터로 변한 것은 값비싼 대접을 받고 있는 콜탄이란 광물 때문이다. 콜탄을 정련하면 고온에 잘 견디는 탄탈(tantal)이라는 금속 분말을 얻을 수 있다. 탄탈은 휴대전화·노트북·제트엔진 등에 널리 쓰이면서 수요가 급증해 ㎏당 수십만원씩 한다. 반군들은 이 콜탄을 암시장에 내다팔아 전쟁자금을 조달하고 있다(박경화,『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해』).
웨스턴고릴라의 아종으로 아프리카 중서부 카메룬·가봉·콩고민주공화국 등지에 살고 있는 웨스턴로랜드고릴라 역시 밀렵과 내전뿐 아니라 에볼라 바이러스의 창궐, 야자유 농장 개발에 따른 서식지 파괴로 위협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웨스턴로랜드고릴라가 10만 마리 미만일 것으로 추정해 왔다. 최근 사람의 접근이 쉽지 않았던 콩고민주공화국 북부 숲과 습지에서 12만5000마리의 웨스턴로랜드고릴라가 새로 발견돼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아직 이르다. 국제자연보호연맹(IUCN)도 전체 영장류 634종 가운데 48%가 멸종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인간의 무분별한 자연 파괴 행위에 제동을 가하지 않는다면 가장 가까운 생물종인 영장류마저 멸종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2008. 8. 8
강찬수 환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