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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올림픽 경기대회

최초작성 [WikiSysop 12.21 13:36] | 마지막 업데이트 [Opentory1 09.05 15:29] 이 문서는 총 577번 읽혔습니다.

(國際 Olympic 競技大會)

목차

| 편집 | 개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4년마다 개최하는 국제스포츠경기대회를 가리킴.

고대 그리스 제전경기의 하나인 올림피아제(祭)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며 훌륭한 육체와 정신을 기르고 대회를 통하여 국제평화친선을 도모하며, 어떠한 나라나 개인에 대해서도 인종, 종교, 정치상의 차별을 하지 않으며, 아마추어들의 개인경기로 민족이나 국가의 경기가 아니며 참가하는 데 목적을 둔다고 하는 올림픽 정신으로 1896년 프랑스쿠베르탱 남작에 의해 아테네에서 제 1 회 대회가 열렸음. 1988년 제24회 올림픽은 한국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 편집 | 올림픽 역사와 정신

그리스 남서부 올림피아에서 열린 고대 올림픽은 기원전 776년부터 로마시대인 기원후 393년까지 무려 1200년 동안 계속되었다. 주최국은 매회 바뀌지 않고 처음 올림픽을 제안했던 도시국가 엘리스가 계속 맡았다.


올림픽 준비는 적어도 1년 전부터 시작했다. 올림픽 참가 선수들이 10개월 전부터는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엘리스는 그리스 세계 곳곳으로 전령들을 보내 올림픽 개최를 알렸다. 전령들은 동-서로는 시리아에서 바르셀로나까지, 남-북으로는 북부 아프리카에서 흑해 연안까지 멀고 먼 길을 달려가 소식을 전했다. 올림픽에 참가할 선수들은 이때부터 코치의 엄격한 감시 아래 훈련을 받았다. 훈련은 단순히 체육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젊은 선수들은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 취지에 따라 운동하는 사이에 틈틈이 읽기.쓰기 교육은 물론 음악 교육까지도 받았다.


선수들은 올림픽이 열리기 한 달 전 엘리스에 도착해 올림픽 심판들의 건전한 육체와 정신에 대한 엄격한 심사를 거쳤다. 그 과정에서 많은 참가자들이 탈락의 쓴 잔을 마시고 관람석에서 구경해야 했다.

그리스 도시국가는 수백에 이르렀다. 이들 도시국가의 12세 이상 시민이라면 누구나 올림픽 선수로 참가할 수 있었다. 이들은 국가를 대표한 것이 아니라 개인 자격으로 참가했다. 올림픽은 개인의 역량과 덕을 가리는 선의의 경쟁의 장이지 국가나 특정 집단의 우열을 가리는 곳이 아니었다. 그러기에 고대 올림픽 종목에는 축구나 이어달리기 같은 단체 경기가 없었다. 달리기와 레슬링.권투.원반던지기와 같은 개인 종목만 있었을 뿐이다.


여성들은 종교적 전통에 따라 고대 올림픽에 참가할 수도, 관람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토착신 데메테르 카미네를 모시는 여사제의 관람은 필수적이었다. 그녀가 올림픽을 참관해야만 올림픽 경기가 정식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녀의 좌석은 지금도 스타디움 북쪽에 남아 있다.


특기할 점은 당시 선수들이 모두 벌거벗고 출전했다는 점이다. 남자들이 알몸으로 벌이는 스포츠 제전에 여자들의 관람이 금지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왜 벗었을까. 고대 올림픽은 제우스 신에게 바쳐진 스포츠 제전이었으므로 올림픽의 제1 관객은 제우스 자신이었다. 그래서 올림피아의 스타디움은 제우스 신전에 모셔져 있는 제우스 신상이 굽어보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제우스신 앞에 선수들이 벌거벗은 몸매를 드러내는 것은 당연했다. 벌거벗는 것은 수치가 아니라 오히려 깊은 경건함의 표시였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올림픽에서뿐 아니라 평소에 운동을 할 때도 옷을 벗었다. 체육을 뜻하는 그리스 말 '귐나스티케(gymnastike)'는 '벌거벗다'를 뜻하는 어간 '귐(gymn-)'에서 온 말이다. 운동을 하는 곳을 가리키는 '귐나시온(gymnasion)'도 '벌거벗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리스인들에게 운동은 철학이나 정치적 토론, 경제 활동만큼이나 중요했다. 그래서 모든 도시국가에는 종교적 중심지인 아크로폴리스와 경제활동의 중심인 아고라, 교육과 오락의 장인 극장과 함께 시민 건강을 위한 귐나시온이 반드시 있어야 했다.


고대 올림픽에서 승패는 중요하지 않았다. 최대한으로 갈고 닦은 최고의 기량과 고도로 단련된 아름다운 육체를 가진 선수들이 불굴의 투지로 최선을 다해 정정당당하게 겨루는 모습을 보여 주어 제우스 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고대 올림픽의 목적이었다.

제우스는 이렇게 최선을 다하는 인간들에게 용기와 힘을 북돋우고, 가장 아름다운 몸과 영혼을 가진 자에게 승리의 영광을 주었다. 이런 선의의 경쟁에 승자도 패자도 있을 수 없었다. 승자는 제우스의 선택을 받은 '최고의 인간'이고 패자는 승자의 최고 기량을 보여 줄 수 있도록 도와 준 동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대 올림픽 정신은 로마시대에 와서 폭군 네로에 의해 여지없이 짓밟힌다. 자기 과시욕에 사로잡힌 네로는 자신이 참가할 수 있도록 올림픽 개최를 2년 늦추는가 하면 규정에도 없는 음악 경연을 신설해 우승한다.

또 전차 경기에서는 도중에 넘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고만 없었다면 우승이 확실했다는 억지를 부려 이 경기에서도 우승한다. 네로가 죽은 뒤, 이 우승은 취소되었지만 올림픽 정신의 훼손은 다시 회복되지 못했다. 고대 올림픽은 최고의 기량과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신을 기쁘게 하고 이를 통해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겸허하고 진지한 탐구의 과정이었다. 그러기에 승리자가 받는 보상은 고작 야생 올리브관 하나였을 뿐이다. 또 우승자는 조국에 영광을 안겨 주기는 했지만 국력을 상징하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개인의 영광이었을 뿐이다.



| 편집 | 한국 역대 올림픽 성적

출처:중아일보 2008.08.25
출처:중아일보 2008.08.25

한국은 베이징 올림픽에서 역대 최다인 13개의 금메달을 따냈다. 은메달 10개, 동메달 8개를 더해 국가별 메달 순위에서 종합 7위에 올랐다. 8위에 머문 일본(금9, 은6, 동10개)을 제치고 8년 만에 아시아 2위에 복귀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목표로 삼았던 ‘10-10(금메달 10개- 세계 10위)’ 프로젝트를 초과 달성했다.


한국은 안방에서 열렸던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금메달 12개로 종합 4위를 차지했고, 92년 바르셀로나 대회에선 종합 7위(금 12)에 올랐다. 그러나 96년 애틀랜타 올림픽부터는 성적이 기대에 못 미쳤다.

애틀랜타 대회에선 종합 10위(금 7개)에 턱걸이한 뒤 2000년 시드니 대회에선 금메달 8개로 종합 12위에 머물렀다. 4년 전 아테네 대회에선 중국과 라이벌 일본(금 16개·종합 6위)에 밀려 종합 9위(금 9)에 그쳤다.



| 편집 | 관련 표제어

성화

쿠베르탱

베이징 올림픽

크로노스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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