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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최초작성 [WikiSysop 12.21 14:06] | 마지막 업데이트 [Opentory1 05.26 18:15] 이 문서는 총 334번 읽혔습니다.

(People’s Democratic Republic of Ethiopia)


에티오피아

(People’s Democratic Republic of Ethiopia)

그림:에티오피아국기.jpg
정치체계 공화제
수도 아디스아바바
위치 아프리카 북동부
인구 5,338만 명(1994)
언어 암하라어, 영어
종교 에티오피아 정교
자원 커피, 축산물
통화 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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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체제/공화제 국가원수/대통령 의회형태/대표평의회 국제연합가입/1945년 언어/암하라어,영어 종교/에티오피아 정교 자원/커피, 축산물 통화/비르

공식 이름은 에티오피아인민민주공화국. 아프리카 북동부 홍해에 면하는 나라. 면적 113만 3,882㎢, 인구 5,338만 명(1994). 수도는 아디스아바바이다. 에리트레아의 해안평야 등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높이 2,400m 전후의 고원지대이며, 서부로부터 청· 백의 두 나일강이 흐른다. 기후는 열대에 속하나 고원지대에서 대체로 온난하고 저지대는 무덥다.

주민의 약 40가 계(系)의 갈라족이고, 그 밖에는 계· 니그로계 등이다. 종교는 태반이 에티오피아정교회에 속하며, 이슬람교도도 많다. 공용어는 암하라어이나 영어도 널리 쓰이며, 문맹률은 72%이다.

BC 10세기 이집트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왕국이 이루어졌다고 하며, 1세기 말에 악숨왕조가 수립되어 6세기에 대제국이 되고 10세기에 멸망하였다. 4세기에 콥트파(派)의 그리스도교가 전파되면서 아프리카 유일의 그리스도교국이 되었다. 7세기에 이슬람 세력의 포위로 말미암아 다른 그리스도교 세계로부터 고립된 후 군소국(群小國)으로 분열하였다. 19세기 중엽에 통일국가가 성립되었는데, 1889년 즉위한 메넬리크 2세는 에리트레아를 점령하였고 96년에는 침입한 이탈리아군을 격퇴하였다. 1936년 이탈리아에 점령되었으나, 41년 영국과 연합군을 결성하여 독립을 회복하고, 62년 에리트레아를 병합하였다. 73년 동부의 오가덴지방에서 일어난 소말리아족의 반정부투쟁 및 가뭄에 의한 10만 명의 아사(餓死), 석유 위기의 영향에 의한 물가앙등이 도화선이 되어 수도의 소요가 군대의 반란으로 확대되었고, 74년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 1세가 군부에 의해 폐위당하였다. 75년 왕정이 무너지고 사회주의공화국이 선포되었다. 77년 임시군사평의회 의장에 멘기스투 중령이 취임하였다. 87년 새 헌법의 제정과 함께 임시군사평의회 대신 국회가 창설되고, 멘기스투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그는 마르크스주의 정책을 도입하는 등 사회주의 노선을 걸었으나, 경제악화로 에티오피아인민해방민주전선(EPRDP)과 에리트레아인민해방전선(EPLF) 등 반(反)멘기스투 연합세력의 공격을 받아왔다. 90년 소련의 지원이 중단되자 경제는 회복불능 상태가 되고, 반군의 공격이 한층 격화되어 91년 멘기스투 대통령이 국외탈출하였다. 정부군은 사실상 항복을 선언하고 협상, 새로 구성된 국민평의회에서 EPRDP의 멜레스 제나위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농업이 주산업으로, 커피가 주요 수출품이다. 그 밖에 옥수수· 기장· 보리· 밀이 재배되나, 가뭄과 메뚜기의 이상 발생으로 식량난을 종종 겪는다. 양· 소· 염소 등의 축산업도 있다. 아디스아바바· 아스마라를 중심으로 섬유· 식품가공 등의 소규모 공장이 있다. 통화는 비르이며, 국민총생산은 53억 2,900만 달러(1993), 1인당국민소득은 100달러(1993)이다. 국제연합(UN)이 정한 세계 10대 빈국의 하나로, 최근의 극심한 기근으로 84년에만 50만 명이 굶어죽었고, 600만 명이 그 직전에 있다. 6·25전쟁 참전 16개국의 하나이다. 1963년 우리나라와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하였고, 북한과는 75년 국교를 수립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16개 참전국 중 하나다. 당시 셀라시에 황제는 근위대 병력을 차출해 보냈다. 6037명의 군인이 세 차례에 걸쳐 파병돼 536명이 부상하고 121명이 사망했다. 처절했던 폭찹힐 전투(1953년)에도 참가했다. 한국전 참전용사회 간부 레테르가조 아베베(79)는 "당시 에티오피아군은 16개 참전국 중 유일하게 포로가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용감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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