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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관혼상제)

최초작성 [WikiSysop 12.21 14:16] | 마지막 업데이트 [Opentory1 09.05 11:33] 이 문서는 총 136번 읽혔습니다.
다른 뜻은 제사에 있습니다.

(祭祀)

| 편집 | 제사

image:제사(관혼상제).jpg

  • 해남 윤씨 고산 윤선도 종가 제사 모습.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출처:중앙일보,2008.09.05


신령에게 음식을 바치어 정성을 표하는 예절로 제례(祭禮)라고도 한다.


크게 가제(家祭)와 묘제(墓祭)로 나눈다.

가제는 3년상이 끝난 뒤에 4세대 동안 지내는 것으로서, 기제사(忌祭祀)와 차례(茶禮)가 있다.

기제사는 조상기일 전날밤부터 이튿날 새벽 사이에 지내는 것으로, 호주상속의 상징이기도 하다. 장남 계통에서 4세대를 지냈다고 하더라도, 차남 이하의 계통에서 4세대 이내의 자손이 있는 경우, 엄격하게는 제사를 그들 자손집으로 옮겨서 지낸다. 차례는 1년에 3~5차례, 주로 · 추석 등 명절 아침에 기제사를 모시는 모든 조상에게 지내게 된다. 보통 큰집에 모두 모여서 지낸 뒤에 집안 내의 각 집을 돌면서 각대의 조상을 모시게 된다.

이와는 달리 묘제(時祭;時享祭)는 5세대 이상의 조상에게 매년 일정한 날에 묘지에서 지낸다. 이 행사는 자손 전원 또는 문중행사로서 거행되는데, 묘소에 전원이 모여서 시조부터 순서대로 지내게 된다. 옛날에는 제사를 중요시하는 것이 양반의 신분을 과시하는 하나의 표시이기도 하였고, 성대한 묘제는 문중의 위세를 과시하는 행위이기도 하였다.


| 편집 | 제사상

제사상에도 좌의정·우의정이 있다

흔히 ‘어동육서’로 표현되는 상차림이다. 이 표현은 18~19세기 조선예서에 등장한다. 그러나 좌간남(左肝南)·우간남(右肝南)이란 표현이 먼저다. 1609년에 나온 『영접도감의궤(迎接都監儀軌)』에 나온다. ‘간남’이란 손님 상 남쪽에 차려지는 중요한 밥 반찬을 말한다.

안동 권씨가의 제사 기록인 『묘사의절(墓祀儀節)』에 따르면 좌측에는 육남(肉南, 갈비찜·수육·육탕 등)을 뒀고, 우측에는 어남(魚南, 조개전·멸치전·합탕 등)을 뒀다. 김상보 교수는 “이는 상차림에 있어서도 좌의정·우의정에 해당하는 것으로 음양질서에서 양(陽)에 해당하는 고기 반찬이 좌간남으로 보다 격이 높은 음식”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제사 상차림은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좌간남·우간남’의 법식에 맞춘 데서 기인한다.


제사 상차림은 불교식?

김 교수는 “제사 의례가 유교 전례를 정확히 따른 것이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상차림에 있어서 고려시대 불교식 공양을 많이 본받았다”고 지적했다. 고려 왕실은 종묘제·사직제 같은 공식 국가 행사에서는 유교식 관례를, 왕실의 기일 등 사적 영역에서는 불교식 의례를 따랐다. 이 사적 공간의 제사가 조선 왕조에 계승되면서 유교적 요소가 가미돼 변형됐다는 해석이다. 그는 “고려 때부터 지속된 사적 공간에서의 불교식 음식 상차림이 조선조에 오면서 가례(家禮)를 수입하면서 규범화된 것이 지금의 제사상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과일을 고이는 것도 불교식 재(齋)의 영향이 크다. 이에 비춰보면 제사가 유교라는 종교 행사라기보다 한국 고유의 조상 숭배 전통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제사상에도 육-해-공의 순서?

제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음식은 (炙)이다. 제사상의 가운데에 위치한다. 술 안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적’이며, 밥 반찬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 좌간남·우간남이다. 『묘사의절』은 ‘적’을 “우(羽)·모(毛)·린(鱗) 3적의 첨합(添合)”이라고 기록한다. 깃털을 뜻하는 우(羽)는 닭이나 꿩고기로 만든 적이다. 모(毛)는 털을 의미하니 육지의 고기를 말한다. 원래는 소의 간(肝)을 구운 것이다. 린(鱗)은 비늘이니 물고기로 만든 어적(魚炙)이다.

제사에서 술을 세 번 올릴 때 초헌(初獻)에서는 술과 함께 간적(肝炙)을 올리고, 아헌(亞獻)엔 어적(魚炙)을, 종헌(終獻) 때 계적(鷄炙)는 바치는 것이 조선 왕실 법도라도 한다. 세 번 술을 올릴 때마다 세 차례 적을 번갈아 올리고 물리고 하는 것이 맞지만 양반가에서는 이를 쌓아 올려서 고임상으로 냈다. 적을 고이는 순서도 밑에서부터 쇠고기-생선-닭(꿩)의 순서여야 하지만 집안마다 다르다.


제례에서 여성의 위치

학자들도 제사 상차림은 지역·가정마다 달라 ‘가가례(家家禮)’라 부를 만큼 다양하기 때문에 옳으니 그르니 할 수 없다고 한다. ‘남의 제사상에 밤 놓으라 대추 놓으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법도를 따지자면 『예기』에 가장 어긋난 것이 여성의 제사 참례다. 『예기』에는 “제사는 부부가 함께 올린다[夫婦共祭]”라고 돼 있다. 김경선 성균관 석전교육원 교수는 “『주자가례』에도 의례 절차에서 모두 주인[宗孫]과 주부[宗婦]가 함께 행하는 것으로 돼 있다”고 지적한다. 제사 참례는 공자·주자 시대에도 완전히 남녀평등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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