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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초작성 [WikiSysop 02.05 19:51] | 마지막 업데이트 [Kinocine 11.27 12:47] 이 문서는 총 872번 읽혔습니다.

(中國, People's Republic of China)


중국

(People's Republic of China)

그림:중국국기.jpg
정치체계 인민민주주의
수도 베이징
위치 아시아 동북부
인구 11억 2,150만 명(1994)
언어 중국어(북경어)
종교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자원 석탄, 석유, 농축산물
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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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이름은 중화인민공화국. 아시아 동북부에 위치한 광활한 국토를 가진 나라. 면적 957만 2,900㎢, 인구 11억 2,150만 명(1990). 수도는 베이징(北京) 이다. 북위 4도에서 약 53도, 동서가 동경 73도 45분에서 135도 30분 까지 이르는 광대한 지역이다. 북쪽은 몽골, 북서쪽으로부터 북동 쪽은 러시아연방, 남쪽은 베트남·라오스·미얀마, 남서쪽에서 서쪽은 인도·부탄·네팔·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동쪽은 북한 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또 동중국해·남중국해를 사이에 두고 일본·필리핀·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와 서로 마주하고 있다.



목차

| 편집 | 국가 기구

  중화 인민 공화국 헌법에 따라 중국의 중앙 국가 기구는 전국 인민 대표 대회 및 그 상무 위원회ㆍ국가 주석ㆍ국무원ㆍ중앙 군사 위원회ㆍ최고 인민 법원ㆍ최고 인민 검찰원 등 6개 방면으로 구성되었다.   국가 주석ㆍ국무원ㆍ중앙 군사 위원회ㆍ최고 인민 법원ㆍ최고 인민 검찰원은 모두 전국 인민 대표 대회에 의하여 선출되며 전국 인민 대표 대회 및 그 상무 위원회에 대하여 책임진다.


| 편집 | 중국국기·국장·국가·수도

중화인민공화국 국기는 오성 홍기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장은 중앙은 오성이 내리 비치는 천안문(天安門)이고 주위는 곡식 이삭과 기어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는 <의용군 행진곡> 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도는 베이징(北京)이다




| 편집 | 자연

[지형] 서쪽은 높고, 동쪽으로 가면서 낮아진 산지가 전체의 33%를 차지하는데, 가장 높은 곳이 티베트고원으로 해발고도 3,000~5,000m이다. 그 북서쪽 끝의 파미르고원에서부터 많으 높고 험한 산맥이 동쪽으로 뻗어나가 동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낮아져 낮은 구릉이 된다. 주요 산맥은 알타이산맥·톈산산맥(天山山脈)·쿤룬산맥(崑崙山脈)·치롄산맥(祁連山脈)·친링산맥(秦嶺山脈)·난링산맥(南嶺山脈)·다싱안링산맥(大興安嶺山脈)·창바이산맥(長白山脈) 등이다. 이들 산맥은 황허강(黃河)과 양쯔강(揚子江) 등 주요 하천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다. 분지로는 비옥한 쓰촨(四川)·타림·준가얼 분지가 있으며, 동쪽에는 구릉과 평야가 펼쳐져 있는데, 주요 평원으로는 둥베이(東北)·화베이(華北) 평원 등이 있다. 하천은 유역면적 100㎢ 이상의 것이 5,000개가 넘는데, 거의가 동쪽으로 흘러 태평양으로 흘러든다. 주요 하천으로는 헤이룽장강(黑龍江)·랴오허강(療河)·황허강·화이어강(淮河)·양쯔강·첸탕강(錢塘江)·주장강(珠江) 등이 있다.


[기후]전체적으로는 뚜렷한 몬순기후의 특색을 보이나, 국토가 광대하므로 열대에서 냉온대까지, 또 습윤에서 건조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기후를 나타내며, 내륙에서는 대륙성의 건조한 기후가 나타난다. 기온은 특히 겨울에 남북차가 크며, 북부에서 -20℃ 이하일 때 남부에서는 10℃를 넘어 남북차는 약 4℃에 불과하다. 연강수량도 동·남해안에서는 1,500mm를 넘으나 북서쪽으로 갈수록 감소하여 변방에서는 500mm 이하가 된다.


[식물·동물]기후가 다양한 만큼 식물분포도 다양하다. 다싱안링산맥 북부의 낙엽침엽수림으로부터 화베이의 낙엽활엽수림, 화중(華中) 지방 이남의 상록활엽수림, 광둥(廣東)·광시(廣西) 남부의 열대우림에 이르기까지 남북차가 심하고, 내몽골 고원의 온대 초원, 신장(新疆)의 온대사막, 티베트고원의 습원으로부터 북서쪽의 관목지대까지 내륙부도 다양한 분포를 이루고, 동물도 동북부의 호랑이·표범, 내륙부의 늑대·영양, 티베트고원의 야크·구름표범, 쓰촨성(四川省) 서북부의 팬더·사향사슴, 화중(華中) 지방의 천산갑, 윈난(雲南) 지방의 긴팔원숭이 등 진귀한 동물이 많다.


[주민]다민족구가로서 50여 개 민족이 살고 있으나, 한족(漢族)이 가장 많아서 약 94%를 차지한다. 그 밖에 후이족(回族)·티베트족·몽골족·만주족·카자크족·위구르족 등이 산다. 헌법상 각 민족이 자치구·자치주·자치향(自治鄕)을 이루고 있다. 중국 내에서 여러 민족들이 쓰는 언어는 크게 시노티베트어족·알타이어족·인도유럽어족·오스트로아시아어족으로 나눌 수 있다. 문자는 한자와 함께 간체자(簡體字)라 불리는 간략화한 한자가 실용되고 있다. 종교는 불교·이슬람교·그리스도교·도교(道敎)·라마교 등 거의 모든 종교에 걸쳐 있다.



| 편집 | 역사

[전사(前史)] 마오쩌둥(毛澤東) 등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공산당은 1927년 이른바 '징강산(井岡山) 투쟁'을 출발점으로 근거지를 구축하고, 31년 장시성(江西省) 루이진(瑞金)을 거점으로 중화소비에트를 성립시켰다. 그 뒤 예안(延安)에 근거지를 두고 국민당과의 합작으로 항일전쟁을 치렀다. 항일전쟁 승리 후 지배권을 둘러싸고 국공내전을 다시 벌인 결과,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이 탄생하였다.


[제1기(1949~52)] 중국 성립 이듬해에 일어난 우리나라의 6·25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극도로 피폐해진 중국에서는 그것이 하나의 위기였으나, 중국은 오히려 이를 역이용하여 국내적 통일을 다지는 데 활용하였다.


[제2기(1953~57)]소련의 경제적 원조로 소련을 모델로 하는 제1차 5개년계획이 실행되었다. 농업면에서는 토지개혁을 단행하였고, 집단농업을 목표로 하였다. 또 이른바 평화원칙을 내세워 국제사회에서의 외교공세를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스탈린 비판과 관련하여 자유화의 시도로서 백화제방운동(百花齊放運動)을 창도한 것이 중국공산당 비판으로 이어지면서 57년에는 반우파 투쟁으로 발전하였다.


[제3기(1958~62)] 마오쩌둥은 중국의 독자적인 사회주의 건설 방식을 대중의 자발성에 기초한 각 분야에서의 대약진이라 규정하고, 58년 인민공사를 성립하였다. 그러나 객관적 조건을 경시한 성급한 대약진정책으로 최대의 위기에 빠졌다. 59년에는 마오쩌둥에서 류사오치(劉少奇)로 권력승계가 이루어졌다. 60년이 되자 소련은 경제원조를 끊었고, 류사오치 주석에 의하여 조정 정책이 취해졌다.


[제4기(1963~76)] 류사오치의 정책을 마오쩌둥은 부르주아노선이라고 비난하며 대립하였다. 이것이 65년 말부터 문화대혁명이 시작된 직접적 원인이 되었다. 학생·노동자는 마오쩌둥의 이른바 '자본주의의 길을 걷는 실권파(實權派)'에 대한 조반(造反)의 호소에 응답하여 전국에서 홍위병(紅衛兵)·조반파(造反派)가 봉기하였다. 그들에 의한 권력투쟁의 과정에서 류사오치는 실각하고, 69년에 린뱌오(林彪)가 마오쩌둥의 후계자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권력투쟁의 각축전에서 린뱌오 역시 쿠데타가 실패하여 사망하고, 그 뒤 4인방(四人幇)이 대두하였다. 그러나 76년 9월에 마오쩌둥이 사망하자 4인방을 대신하여 권력을 장악한 덩샤오핑(鄧小平)·화궈펑(華國鋒) 등이 4인방을 체포함에 따라 문화대혁명은 종지부를 찍었다. 한편 국제관계도 변화하여 71년 국제연합(UN)의 의석을 차지한 이후, 72년에는 미국과의 화해를 이루고 서방세계와의 국교 정상화가 차츰 이룩되었으나 대소 대립은 더욱 거세어졌다.


[제5기(1977~)] 문화대혁명 후의 깊은 상처는 덩샤오핑-화궈펑 체제가 당면한 큰 문제였다. 린뱌오와 4인방을 단죄하고 류사오치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한편, 문화혁명의 잘못이 지적되었다. 그리하여 새로 4가지 현대화를 내세워 공업·농업·과학기술·국방의 근대화 노력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29년 이후 비문화혁명파인 덩샤오핑을 중심으로 하는 인물들 사이에서 화궈펑정권 비판의 움직임이 있자, 80년 화궈펑은 총리를 사임하였다. 후임 총리로 자오쯔양(趙紫陽)이 선출되고, 이듬해 주석에는 후야오방(胡耀邦)이 결정되었다. 이리하여 중국공산당은 마오쩌둥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 후야오방 주석은 82년 9월의 당대회에서 당의 대표인 총서기에 취임하였다. 82년 11월에 개최된 제5기 전국인민대표대회(약칭 전인대) 제5차 전체회의는 건국 이래 4번째 새 헌법을 채택하여 문화혁명의 극좌적 요소를 일소하고, 국가체제를 민주화하며 4대 현대화를 위한 실용주의 노선을 헌법에 명문화하였다. 새 헌법은 또 국가주석제를 부활하고, 중국 사상 처음으로 국가 주요 공직에 대한 임기를 제한하였다. 83년 6월에 열린 제6기 전인대는 덩샤오핑의 실용주의 노선을 토대로 한 국가요직 재편이 완료된 대회였다. 이대회에서 덩샤오핑·후야오방·자오쯔양·리셴넨(李先念) 등 실용주의 세력이 완전히 권력을 장악하였고, 특히 덩샤오핑은 군의 통수권을 장악하여 사실상 중국 최고의 권력자가 되었다. 이 후 중국은 경제 현대화에 진력하여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으나, 89년 경제발전에 따른 정치발전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과격한 시위가 일어났고, 이 학생들을 무력으로 진압한 비극적 톈안먼사태(天安門사태)가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중국의 개혁은 잠시 뒷걸음치는 듯 하였으나, 덩샤오핑은 당시 총리이던 자오쯔양을 퇴진시키고 장쩌민(江澤民)을 등용하여 변함없이 경제개혁에 박차를 가하였다.


[중국 역대 통일 왕조]]

image:중국역대통일왕조.gif







| 편집 | 정치·군사

[정치기구] 82년 12월에 제정된 4번째 새 헌법에 따르면, 중국의 모든 권력은 인민에게 이으며, 인민이 권력을 행사하는 기관은 전인대와 지방각금인민대표대회인 것으로 되어 있다. 전인대는 입법권을 갖는 국가 최고기관으로, 성(省)·자치구·직할시의 인민대표와 인민해방군이 선출하는 대표에 의하여 구성되며, 임기는 5년, 총인원 약 3,500명(제5기)으로서 매년 1회 개최된다. 전인대의 대표는 선거로 선출되며, 만 18세 이상의 공민에게 선거권·피선거권이 주어지고 있다. 상급인 인민대표대회 대표는 한 급 아래인 인민대표대회에 의하여 선출되는 간접 선거방식을 취한다. 그러나 79년의 조직법 개정에 의하여 직접선거의 범위가 현(縣)단위에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최고 행정기관은 국무원, 즉 중앙인민정부이며, 전인대에 책임을 지고 전국의 행정을 통일적으로 지도한다. 국무원에는 총리 외에 약간 명의 부총리를 두었다. 지방 행정기구는 제1금의 단위로서 21개의 성(省)과 5개의 소수민족 자치구, 3개의 중앙직할시(베이징·상하이·톈진), 그리고 제2급 이하의 단위로서 현·시 또는 자치현, 현 밑에 있는 향(鄕)·민족향(民族鄕)·진(鎭)이 있다. 사법기관으로는 최고 인민법원과 최고인민검찰원이 있는데, 이들은 하급 인민법원과 인민검찰원을 감독함과 동시에 전인대 및 상무위원회에 책임을 지고 있다. 중국은 건국 이래 3차례 헌법을 개정하였는데, 75년과 78년의 헌법에는 '중국공산당은 전국인민의 지도적 중핵이다'라고 규정되어 있으며, 당의 방침과 정책이 우위를 차지하고 행정 역시 당의 동향에 따라 좌우된다고 명시되어 잇다. 그러나 82년 헌법에서는 '모든 국가 기관과 인민 무장세력, 각 정당은 반드시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되어 있고, 당정 분리의 방향이 강화되었다.


[정당]21년에 창립된 중국공산당이 중국을 지도하는 정상으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당원은 만 18세 이상이어야 하며, 당원수는 약 4,000만명(1986)이다. 중앙위원회·중앙정치국·중앙서기처가 당을 지도·운영하고 있다. 중국은 실질적으로 공산당 1개 정당에 의하여 주도되는 체제이나, 명목적으로 민주당파라고 불리는 복수정당이 존재하는데, 국민당혁명위원회·민주동맹 등 8개 정당이 곧 그것이다.


[국제관계] 중국은 스스로를 제3세계의 일원으로 규정하고 있다. 제2차세계대전 후의 동·서 양진영의 냉엄한 냉전구조 가운데서 중국은 오랫동안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을 면하지 못하여 왔다. 중국은 정권수립 후 22년간 국제연합(UN)에 가입하지 못하였으나, 71년 10월의 제26차 UN총회에서 드디어 UN의 대표권을 인정받았다. 한편 중·소 대립의 격화와 더불어 소련을 패권주의로 규정하고 최대의 적대국으로 보게 되었다. 그 결과 반패권(反覇權)이라는 슬로건이 대외정책을 형성하는 기본적 지주로 되어 있어, 미국과 서방 유럽연합체(EU)의 여러나라, 일본 등지와의 사이에 급속한 접근이 이루어졌다. 또한 80년대에 들어선 뒤, 아시아·아프리카 여러나라와도 온건한 관계를 수립하고자 힘쓰고 있다. 우리나라와는 92년 8월 24일 베이징에서 한중수교 공동성명에 서명함으로써 두나라 관계에서의 새 장을 열었다.


[군사] 군사력은 인민해방군과 민병으로 대별되며, 전인대에 의하여 선출된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통솔·지휘한다. 중국의 군대는 27년 국민당과의 내전 관정에서 공산당에 의하여 창설되어 오랫동안 지원병제도에 기초하여 강화되어 왔으나, 55년 의무병역제가 되었고, 78년 이후에는 의무병역과 지원병역이 병용되고 있다. 4대 현대화 노선의 한 가지인 국방의 현대화라는 요청과 더불어 문화혁명 이후에는 군의 근대화가 가장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었다. 병력은 육군 297만명, 해군 36만명, 공군 49만 명으로 추정된다. 민병은 항일전쟁 중에 탄생하여 해방군의 지도하에 훈련받았다. 해방군을 돕는 인민의 무장력으로서의 역할을 하며, 총병력은 약 2,000만 명으로 추산된다. 똫나 46년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한 이래 전략무기 개발을 계속 추진하여 막강한 핵전력 보유국이 되었다. 82년 11월 덩샤오핑이 신설된 국가중앙군사위 주석으로 취임한 이래 중국은 구의 현대화 작업을 적극 추진하여 노쇠한 군의 원로들을 대거 퇴역시키고, 전체병력을 대폭 개혁하여 나가고 있다.



| 편집 | 경제·재정

[경제]건국 이후 토지개혁과 기업의 국유화가 수행되었으며, 53년부터 제1차 5개년계획, 이어서 제2차(1958~62), 제3차(1966~70), 제4차(1971~75), 제5차(1976~80)의 5개년계획이 실시되었다. 제1차의 특징은 공접 중 특히 중공업을 우선으로 삼았고, 생산재의 생산을 3.1배로 확대시켰다. 제2차에서는 생산대약진운동을 전개하여, 농촌에는 인민공사가 설립되었다. 그러나 운동의 성급함과 소련의 원조 중단, 그리고 3년에 걸친 자연 재해로 중대한 경제위기를 맞았다. 제3차는 문화대혁명 시기와 겹쳐 심각한 경제파탄을 가져왔다. 76년부터는 제5차 5개년계획에 들어갔다. 78년에 경제발전 10개년계획(1976~85)을 공표하고, 120개 항목의 대형 ㅍ로젝트 건설이 추진되었다. 그러나 자금 부족 등의 문제가 표면화되어 하향 수정이 가해졌으며, 86년 4월 안정과 균형에 기저를 둔 지속적 성장을 목표로 7차 5개년 계획(1986~90)을 채택하였다. 84년 이후의 경제과열현상과 89년 톈안먼사건 등으로 개혁정책에 제동이 걸리는 듯 하였으나, 90년 이후 경제안정과 정치력에 힘입어 개방·개혁의 속도가 점차 빨리지고 있다.


[재정] 65년 소련에 대하여 차관액을 상환하였고, 68년에는 국내공채도 모두 반제되어 자력갱생의 방침은 오히려 경제·기술 발전의 지체를 초래하여 70년대 말부터 개방정책으로 돌아섰다. 그 결과 대형 플랜트의 도입문제 등을 둘러싸고 재정면에서 혼란이 발생함으로써 조정정책이 취하여졌다.





| 편집 | 산업·무역

[광업] 광물자원이 풍부하여 60년대에 개발된 성리(勝利)·타이항(大港) 유전등에서 생산량이 늘어나 65년 이후 석유의 자급자족이 실현되었다. 석탄은 푸순(撫順)·카이롼 탄전 등이 대표적이며, 석유·석탄 모두 79년 이후로는 신장되지 않고 있다. 주요 광산물은 그 밖에 텅스텐·철·구리 등이 있다.


[공업] 공업의 골격을 이루는 철강업에서 강재(鋼材)의 자급률이 높다. 철강 생산량도 85년에 4,600t으로 전년도보다 7.6%의 신장을 보이고 있으나, 근년에는 중공업 우선정책에서 경공업 우선으로 방향을 전환함으로써 종래 화학비료·시멘트와 더불어 라디오·텔레비전 등이 신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전반적인 공업생산은 매년 10%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농업] 사회의 기초가 농업이므로 농민의 비율이 80% 이상(1980)이다. 주요 농산물은 밀·콩·목화·옥수수·차 이며, 돼지·양·소·말 등의 축산도 널리 이루어지고 있다. 중국은 상당량의 식량을 생산하고 있다. 70년대 초에 비하여 수확량이 크게 증가하였는데도 여전히 식량을 수입하고 있다.


[무역] 50년대에는 소련을 비롯하여 동유럽권이 주요 통산국이었으나, 중·소 대립이 시작되면서 축소되었다. 70년대에는 아시아와 유럽 여러 나라와의 무역이 늘었으며, 80년대 초반과 후반에 무역상의 균형이 거의 이루어졌다. 주요 수출품은 방직품·원유·곡물·식육·어류·과일·채소·의류이며, 주요 수입품은 밀·압연철·화학비료·합성섬유·원면·설탕 등이다.


| 편집 | 사회·문화

10억의 인구를 포용하는 중국의 사회생활은 사상 유례가 없는 변모를 이루고 잇다. 그러나 경제적 후진을 극복하기 위한 과제는 산적되어 있는 상황이다.

[교육] 국민학교 6년제의 초등교육은 대체로 보급되었고, 지방마다 다소의 차가 있기는 하나, 국민학교 위에 초급중학(3년제)·고급중학(3년제)·대학(4년제)이 있다. 그러나 80년 전국적으로 1억 5,000만 명의 문맹이 있었으며, 대학생은 약 115만여 명에 지나지 않아 전반적인 교육수준은 선진국에 비하여 훨씬 낮다. 따라서 라디오·텔리비전 대학, 직업대학, 통신규육 등에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한편 70년대 말 이후 외국의 선진기술을 끌어들이기 위하여 미국·일보과 서유럽 여러 나라에 많은 정부유학생을 파견하고 있다.


[보도·출판]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당의 지도적 지위를 배경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다. 그 밖에 군(軍)의 기관지로서 <해방군보(解放軍報)>가 큰 힘을 가졌고, <광명일보(光明日報)><문회보(文匯報)><공인일보(工人日報)><중국소년보><남방일보> 등이 발행된다. 라디오 방송은 국내·국외에 대하여 방송을 하고 있으며, 통신을 신화사(新華社)외에 해외 화교를 대상으로 하는 중국 신문사가 있다.


[오락·문화] 중국의 전통적인 연극으로서는 경극(京劇)이 있으며, 그 밖에 서방세계의 현대극에 해당하는 화극(話劇)이 있다. 그러나 대중오락으로서 압도적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역시 영화인데, 1970년대 중반 이후 극영화의 제작이 활발한 편이다. 한편 민중의 문화활동의 장소로서 각지에 소년궁(少年宮)·노동자문화궁 등이 설치되어 활용되고 있다.


| 편집 | 중국인이 황금색·붉은색을 좋아하는 이유

중국인들에게 황금색황제의 권위와 명예를 뜻한다. 붉은색은 부와 재산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 색이 중국을 상징한다. 붉은색은 공산당, 즉 권력과 체제를 상징하기도 한다. 중국 사람들은 이런 색이 행운과 재산을 가져다 준다고 믿어 곳곳에 즐겨 쓴다.


| 편집 | 중국의 시차

그림:중국의시차.gif

왜 중국은 시차를 두지 않을까? 두 가지 설명이 있다. 하나는 서부의 인구나 GDP 모두 적어 별도의 시차를 둘 필요가 없다는 경제적 이유에서다. 또 하나는 시차를 인정하면 분열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정치적 논리에서다.

과거에는 어땠을까. 1912년 중화민국 성립 후 당시 중앙기상국은 5개의 시간대를 두었다. 쿤룬(崑崙·GMT+5:30), 신짱(新藏·GMT+6), 룽수(鈺蜀·GMT+7), 중원표준(GMT+8), 창바이(長白·GMT+8:30)시간대(지도)가 그것이다. 39년 내정부는 이를 비준했다. 그러나 49년부터 공산당대만으로 옮겨간 국민당 정부는 모두 베이징 시간을 기준으로 전국의 시간을 통일했다.

2005년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국회 격)에서 시차를 두자는 건의가 나왔다. 베이징 시간을 동부시간, 산시(陝西)를 기준으로 한 중부시간, 신장·티베트의 서부시간 등으로 나누자는 제안이었다. 이 안은 베이징 시간과 서부시간 두 개로 나누는 안으로 수정됐으나 표결까지는 오르지 못했다.



| 편집 | 중국의 4대 전통극

그림:중국의4대전통극.jpg



| 편집 | 차이나 레드(中國紅)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더니, 태양이 솟아올랐다. 중국에 마오쩌둥이 나타났다."

중국 산시(陝西)성 북부의 민요를 바탕으로 농부가 지었다는 혁명가 ‘동방홍(東方紅)’의 첫 구절이다.

중국 갓난아이의 배냇저고리, 결혼식 장식, 입춘에 기둥이나 벽에 써 붙이는 주련(柱聯) 등에 쓰이는 색의 공통점은 모두 ‘차이나 레드(中國紅·짙은 홍색)’다.

붉은색은 행운과 기쁨을 상징한다. 악귀를 쫓고 복을 부르는 의미가 있다. 인생의 3대 기쁨이라는 결혼·장원급제·출산을 기념하는 색이 모두 붉은 이유다.

중국인이 가장 좋아한다는 이 차이나 레드의 연원은 어딜까. 고대 태양신(太陽神)과 대지신(大地神)에 대한 숭배에서 기원한다. 동쪽에서 떠오른 태양이 정오엔 정남 방향의 상공에서 타오르며, 눈부신 빛깔을 온누리에 뿌린다. 그리하여 햇빛이 가장 뜨거운 시각의 상징으로 불 ‘화(火)’자를 포개어 쓴 ‘염(炎)’자가 있고, 그 색깔이 붉은색(紅)이라고 생각했다.

베이징에서 차이나 레드와 맞닥뜨리는 곳은 자금성이다. 문과 벽이 온통 붉다. 이 붉은색은 자금성 지붕 기와의 노란 색과 조화를 이룬다. 하늘의 붉은색과 중앙을 상징하는 ‘토(土)’의 노란색 모두를 황제가 독점한다는 의미다.

차이나 레드는 오행(五行) 관념에도 이어진다. 전국시대 제(齊)나라 추연(鄒衍)은 ‘오덕종시설(五德終始說)’에서 오행을 역사의 추이에 적용시켜 각 왕조가 토(土·황색), 목(木·청색), 금(金·백색), 화(火·적색), 수(水·흑색)의 순서로 변한다고 주장했다. 황색의 황제(黃帝) 통치 이후엔 청색의 우(禹)왕, 백색의 탕(湯)왕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문(文)왕 이래 적색의 주(周)를 이어서는 수(水) 기운을 가진 흑색의 통일왕조가 등장한다는 논리다.

주를 이어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은 의복과 기(旗)에 모두 검은색을 썼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 편집 | 21세기 중국 문학

중국 당다이(當代) 문학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출범 이후의 중국 문학을 가리키는 문학 용어. 중국은 자신의 문학사를 49년 이전과 이후로 나눠서 설명한다. 다시 말해 당다이 문학은 중국 사회주의 체제 하의 문학을 가리킨다.



■ 베이징(北京)


류전윈(劉震雲)

1956년 허난성(河南城) 출생. 베이징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루쉰문학원에서 소설 창작을 전공했다. 이른바 ‘엘리트 코스’를 충실히 밟은 작가다. 현재 1급 작가 신분으로 루쉰문학상 심사위원을 맡고 있다. 베이징 소시민의 자질구레한 일상에서 우울함과 절망을 길어내는 솜씨가 탁월하다. 세밀한 일상 묘사로 중국 문단의 신사실주의 조류를 대표한다. 중편 ‘닭털 같은 나날(一地鷄毛)’(1990)이 대표작. 한국황석영이 중국 최고의 리얼리스트로 꼽는 작가다.

왕숴(王朔)

1958년 베이징 출생. 이른바, 중국 문단 유일의 ‘건달작가’. 작품 제목에서도 왕숴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사회주의적 범죄는 즐겁다’(1986) ‘건달’(1987) ‘노는 것만큼 신나는 것도 없다’(1989) 등등. 베이징 최하층의 변변치 못한 삶을 통해 중국식 개혁·개방의 그늘을 조망한다. 소설 10여 편이 영화와 TV 드라마로 제작됐을 정도로 대중의 호응이 높지만 문학성도 동시에 인정받는다. 특히 베이징 뒷골목의 상스러운 어휘와 마오쩌둥(毛澤東) 어록을 동시에 부리는 능란한 언어 감각이 돋보인다.

첸리췬(錢理群)

1939년 충칭(重慶) 출생. 베이징대 중문과 교수로 있다가 2002년 정년 퇴임했다. 교수 시절, 강의마다 1000명이 넘는 학생이 몰렸던 걸로 유명하다. 중국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경전 루쉰(魯迅) 연구로 1인자이며 동시에 문화혁명을 가장 신랄하게 비판하는 지식인이다.

왕멍(王蒙)

1934년 베이징 출생.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와 평생을 함께한 대표적인 공산주의 작가. 중국문학 연구자 사이에 “20세기 전반 중국 소설에 루쉰(魯迅)이 있었다면 20세 후반엔 왕멍이 있다”는 설(說)이 있을 정도다. 14세에 공산당 지하 당원이 됐고, 58년 반우파 투쟁에 휩쓸려 위구르 지역에 유배되기도 했다. 78년 복권됐고, 중국 문화부장·중국작가협회 부주석 겸 당서기 등 고위 관직을 두루 거쳤다. 중국인이 1순위로 꼽는 노벨문학상 후보. 장편 『변신인형』(1986)이 대표작으로 통한다. 사회주의 이념에 충실하면서도 삶의 부조리를 파헤치는 작품 세계를 선보인다. 아들 왕산(王山)이 중국작가협회 기관지 ‘문예보(文藝報)’ 주임으로 있다.



■ 산둥(山東)

모옌(莫言)

1956년 산둥 출생. 산둥에서도 오지 가오미현의 빈농 출신이다.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했다. 직업 군인으로 꼬박 22년을 살았다. 군인 신분으로 문학을 공부했고, 소설을 발표했다. 한국을 비롯하여 대륙 바깥에선 중국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통하지만, 대륙 안쪽에선 중국 군인문학의 수장으로 더 알려져 있다. 한국에 번역된 작품이 십 수 권에 달한다. 장이머우(張藝謀)가 영화로 만든 중편 ‘붉은 수수’가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지만, 문학적 입장에선 장편 『술의 나라(酒國)』를 추천한다. 술에 취해 비틀대는 나라, 모옌이 바라본 중국의 모습이다.



■ 시안(西安)

자핑와(賈平凹)

1952년 산시성(陝西省) 출생. 80년대 중반 중국 문단을 풍미했던 ‘뿌리찾기 문학(尋根文學)’의 대표작가. 91년 발표한 장편소설 『폐도(廢都)』가 1000만 부 넘게 팔렸다. 『폐도』는 1만 년 역사의 고도 시안에 사는 인간군상을 다룬 작품으로, 시안 지방 특유의 방언이 수시로 등장한다. 사실 자핑와란 이름도 산시성 방언을 따른 것이다. 베이징 식이라면 ‘자핑아오’여야 한다. 그러니까 자핑와는, 온몸으로 시안의 지역색을 표현하는 작가다. 『폐도』에서의 파격적인 성애묘사로 애로작가로 오해된 적도 있지만, 작품 성향은 기본적으로 농촌문학이다.



■ 상하이(上海)

왕안이(王安憶)

1954년 난징(南京)에서 태어나 55년 상하이에 정착했다. 중국 푸단대 중문과 교수이자 상하이작가협회 주석, 중국작가협회 부주석이다. 중국작가협회 주석 티에닝(鐵凝)과 함께 당대 중국 여성문학의 양대 거두다. 권력만 막강한 게 아니다. 문학성도 높은 평가를 듣는다. 마오둔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장편소설 『장한가(長恨歌)』가 대표작. 반세기에 걸친 상하이 소시민의 삶을 추적한 역작이다. 첸리췬이 중국 작가 중에서 으뜸으로 친다. “당국의 감시 피하며 할 말 다 하는 작가”란 첸리췬의 평이 재미있다. 한국엔 아직 소개된 작품이 없다.

천쓰허(陳思和)

1954년 상하이 출생. 푸단대 중문과 학과장이자 중국 당대문학연구회 부회장. 중국 정부가 지정한 제1호 장강학자다. 장강학자는 중국 교육부가 인재 육성을 위해 제정한 특별교수직. 이 자리에 천쓰허가 첫 번째로 뽑혔다는 건, 그가 문학의 영역을 뛰어넘는 중국 지성계의 거목이란 사실을 가리킨다. 천쓰허 비평 작업의 최고 성과라면 중국문학사를 20세기 전체 흐름에서 접근했다는 데 있다. 이제껏 중국문학사는 49년 공화국 설립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 설명돼 왔다. 문학의 역할보다 문학 본연의 의미를 중시하는, 소위 자유주의 비평가다. 천쓰허는 “특히 위화(余華)의 작업을 주목한다”고 밝혔다. 천쓰허 비평서 『중국신문학 정체관』은 중국 연구자의 필독서다.



■ 해외거주 작가

해외 거주 작가들에 대한 중국 내부의 시각은 차가운 편이다. 가오싱젠(高行健·사진左)·류짜이푸(劉再復)·베이다오(北島) 등 대부분이 정치적인 이유로 망명을 한 지식인이어서다. 그렇다고 이들 모두를 중국이 부정하는 건 아니다. 예컨대 프랑스로 망명한 가오싱젠은 부인하지만, 중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은 베이다오는 중국문학의 범주 안에서 바라본다.

한편으로 미국 작가 하진(Hajin·51)과 같은 경우도 있다. 중국에서 태어나 미국에 유학 중이었던 하진은 89년 천안문 사태 소식을 듣고 귀국을 포기했다. 이후 미국에서 영어로 소설을 쓰고 있다. 보스턴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30여 개 국가에 작품이 소개됐다. 이른바 재미중국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프랑스엔 천재작가 샨사(Shan-sa·사진下·36)가 있다. 9세에 중국에서 시집을 출간, 대륙을 놀랜 주인공이다. 90년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로 유학을 갔고, 프랑스어 공부한 지 7년 만에 불어 소설 『천안문』을 발표했다. 2000년 프랑스 국적을 땄다. 언어 부리는 솜씨가 빼어나고, 소설 구성도 탄탄하다. 한국음식을 무척 좋아해 종종 소설 소재로 쓰이기도 한다. 하진과 샨사 모두 국내 독자층이 두텁다.



■ 소수민족 작가

중국엔 한족(漢族)과 55개의 다른 민족이 있다. 이에 따라 중국 문화는 56개 민족의 문화가 서로 엉키거나 떨어진 채로 존재한다. 문학도 사정은 같다. 자신의 언어를 가진 민족은 자신의 언어로 문학을 한다. 중국 정부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동시에 중국어로 작품을 발표하는 소수민족 작가도 여럿이다. 이들도 중국 주류 문학의 한 축을 이룬다. 80년대엔 티베트벳 출신 알라이 자시다와가 두드러졌고, 최근엔 조선족 작가 진런순(金仁順·38·사진)의 이름이 자주 보인다. 진런순은 이제껏 장편소설 10여 편을 발표했는데, 대부분이 연애소설이다. 특히 장편 『엄마의 된장찌개 집』은 2005년 CCTV에서 드라마로 제작돼 중국 전역에 방송됐다. 진런순은 “내 작품의 독자는 13억 중국인”이라고 단언했다.

| 편집 | 중국 공산당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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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베이징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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